보라빛 그대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0-07-12

조회수 1739

        며칠 전 아침, 햇살 내리는 들녘을 지나다가 길가에 
        피어있는 보라색꽃을 보았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어 그냥 '7월의 꽃'이라 부르기로 한 그 
        꽃,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적당한 키에 수줍은 
        여인네의 미소처럼 함초롬이 피어있는 보라색꽃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잠시 차창으로 스쳐 지나갔건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박함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지닌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비 내리는 월요일 아침, 나는 뜻밖의 장소에서 그 
        꽃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방송국 건너편 작은 텃밭에서요.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식후에 즐거운 이야기가 꽃 피는 티타임을 뒤로 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님을 보고자운 마음에... 

        보슬비가  내리는 텃밭에서 아저씨 한 분이 몸을 숙여 
        부지런히 일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는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텃밭 이 편에 서서 두 손으로 
        나발을 만들어 큰 소리로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아저씨~~~!  거기 있는 보라색꽃, 이름이 뭐예요~~?" 
        아저씨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시늉을 합니다. 
        나는 하얀 구두에 흙이 묻을까 발꿈치를 들고 밭 사이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저 꽃 말이요? 저건 도라지꽃이올시다." 
        아! 도라지... 
        그 어여쁜 꽃이 어릴 적 동요로 불렀던 
        도라지꽃이었다니... 

        "아저씨, 이 꽃 한 송이만 주실래요?" 
        "한 송이는 무슨~ 맘에 드는 대로 많이 갖고 가슈" 
        나는 그 중 한 송이를 꺽어 들고 스튜디오로 
        돌아왔습니다. 
        오전에 커피를 마셨던 종이컵을 잘 씻고 시원한 냉수 한 
        컵을 가득 부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스런 보라색꽃을 꽂았습니다. 

        사랑하는 님의 얼굴을 대하듯 멘트 한 줄 읽고 꽃 한번 
        쳐다보고 음악 한 곡 틀고 눈 한 번 맞추고... 
        자꾸만 미소가 번져났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작은 꽃 한 송이가 그토록 가슴을 설레게 하다니... 
        그러고보면 산다는 것은 황홀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조금만 마음의 눈을 열면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