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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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무렵, 내가 쓰는 스튜디오 안은 마치 전쟁터처럼 
어지럽다. 
주제에 맞추느라 잔뜩 펼쳐 놓은 casette tape, cd,md, 
dat 더미 속에서 얼굴만 내 놓고 숨을 쉬는 듯하다. 
잠시 닫혀 있던 창을 열어 맑은 공기를 쐬어보지만 오후의 
나른함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다. 

마이크의 불이 꺼지자 아리따운 이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뒤에 감추었던 검은 봉지 하나를 
내민다. 
"피곤하시죠? 힘이 날 거예요." 
내 주먹 두어 개만한 작은 꿀단지였다. 

사랑하는 이들이 건네주는 비타민c 하나, 차 한 잔,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놓고간 껌 하나의 흔적,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순한 눈빛으로 건네주는 사랑의 마음, 배려가 담겨 
있는 작은 동작, 마치 어깨를 감싸안듯 따뜻함으로 
전해주는 한 마디 격려의 말에 주책도 없이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사람들은 각박한 세상이라고 말을 한다. 
피 터지게 싸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한다. 
남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해야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을 누르고 밟아야 이길 수 있으리라 여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보여지는 강한 힘이나 큰 동작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조용하고도 부드러운 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랑의 힘에 있음을... 

아무리 모진 바람이 분다 하더라도 세상 한 모퉁이에 
봄바람처럼 따스하고 착한 마음들이 살고 있으니 아직은 
아름다움을 꿈꿀 수 있는 세상, 희망이 있는 세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