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나이 마흔에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1999-07-07
조회수 3091
내 나이 마흔도 절반을 넘겼습니다.
급한 물살 같이 빠르게 지난 6개월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봅니다.
내 머리카락은 언제나 짧았습니다.
머리를 빗겨줄 때마다 따갑다고 울어대는 바람에 초등학교 때는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그때를 아십니까?'에 등장하는 오리지널 헤어스타일이었지요.
중학교에 다닐 때는 대부분의 여자애들처럼 당연한 단발, 여고시절엔 묶어서 5cm를 지켜야 하는 갈래머리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시절엔 조금 더 발전해서 퍼머끼 없이 찰랑거리는 단발이었지요.
그러다가 4학년 가을 무렵 졸업 앨범을 찍기로 했던 하루 전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작스런 변심(?)으로 변신(?)을 했던 것이 지난 해까지의 내 헤어스타일의 변천사 전부입니다.
사실 누구나 하는 일, 머리카락을 자르고 기르고 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일까요?
그러나 나의 경우엔 머리카락에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요, 두 아이의 엄마요,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살아오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지만 사랑의 이름으로 양보해야 할 때 애궂은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아마도 포기를 수용해야 하겠다는 의지를 스스로에게 표현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변화가 필요할 때도 내 머리카락은 어김없이 싹둑싹둑 잘려나갔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그나마 새로운 분위기를 맛보려 했나 봅니다.
단정하지 않아서 자르고, 지저분해서 자르고... 이런 저런 이유로 머리를 길러보려고 했던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짧은 헤어스타일의 그 모습이 늘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마흔하고도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머리카락이 자라나 굵은 웨이브를 이루고 어깨 너머에서 물결치고 있습니다.
마흔에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일 중에서 한 가지를 해내고 있는 셈입니다.
40년만에 길게 기른 내 머리카락..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 때로 미소를 머금습니다.
생각건대 마흔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또 마흔을 맞고서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감정의 물결이 흘러가도록 그냥 두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너다운 모습'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가두지 않습니다. 방파제를 쌓지도 않습니다. 컵에 물이 가득 차면 저절로 흘러넘치듯 그렇게 두겠습니다.
마흔이 좋습니다.
물 흐르듯 살아가는 여유를 배우는 마흔이...
악착같이 가지겠다고 안달하지 않고 가지되 내 것이라고 우기지 아니하며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는 마흔이 참 편안합니다.
나와 다른 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말을 마음으로 배워갑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어떤 이가 그러더군요.
바다 위엔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세어도 몇m만 아래로 내려가면 그 곳엔 고요함이 있다고.
수심이 깊을수록 육지서 사는 사람들을 생각지도 못하는 아름다운 광경들이 펼쳐지는 바다처럼 나이를 먹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서른엔 몰랐던 것을 마흔에는 알게 되는 걸까요?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40대의 시작,
기대와 설레임으로 조심스런 걸음을 내딛습니다.
내 나이 마흔, 이거 꽤 괜찮은 일 아닌가요? ^ ^
급한 물살 같이 빠르게 지난 6개월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봅니다.
내 머리카락은 언제나 짧았습니다.
머리를 빗겨줄 때마다 따갑다고 울어대는 바람에 초등학교 때는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그때를 아십니까?'에 등장하는 오리지널 헤어스타일이었지요.
중학교에 다닐 때는 대부분의 여자애들처럼 당연한 단발, 여고시절엔 묶어서 5cm를 지켜야 하는 갈래머리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시절엔 조금 더 발전해서 퍼머끼 없이 찰랑거리는 단발이었지요.
그러다가 4학년 가을 무렵 졸업 앨범을 찍기로 했던 하루 전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작스런 변심(?)으로 변신(?)을 했던 것이 지난 해까지의 내 헤어스타일의 변천사 전부입니다.
사실 누구나 하는 일, 머리카락을 자르고 기르고 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일까요?
그러나 나의 경우엔 머리카락에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요, 두 아이의 엄마요,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살아오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지만 사랑의 이름으로 양보해야 할 때 애궂은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아마도 포기를 수용해야 하겠다는 의지를 스스로에게 표현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변화가 필요할 때도 내 머리카락은 어김없이 싹둑싹둑 잘려나갔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그나마 새로운 분위기를 맛보려 했나 봅니다.
단정하지 않아서 자르고, 지저분해서 자르고... 이런 저런 이유로 머리를 길러보려고 했던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짧은 헤어스타일의 그 모습이 늘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마흔하고도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머리카락이 자라나 굵은 웨이브를 이루고 어깨 너머에서 물결치고 있습니다.
마흔에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일 중에서 한 가지를 해내고 있는 셈입니다.
40년만에 길게 기른 내 머리카락..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 때로 미소를 머금습니다.
생각건대 마흔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또 마흔을 맞고서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감정의 물결이 흘러가도록 그냥 두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너다운 모습'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가두지 않습니다. 방파제를 쌓지도 않습니다. 컵에 물이 가득 차면 저절로 흘러넘치듯 그렇게 두겠습니다.
마흔이 좋습니다.
물 흐르듯 살아가는 여유를 배우는 마흔이...
악착같이 가지겠다고 안달하지 않고 가지되 내 것이라고 우기지 아니하며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는 마흔이 참 편안합니다.
나와 다른 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말을 마음으로 배워갑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어떤 이가 그러더군요.
바다 위엔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세어도 몇m만 아래로 내려가면 그 곳엔 고요함이 있다고.
수심이 깊을수록 육지서 사는 사람들을 생각지도 못하는 아름다운 광경들이 펼쳐지는 바다처럼 나이를 먹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서른엔 몰랐던 것을 마흔에는 알게 되는 걸까요?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40대의 시작,
기대와 설레임으로 조심스런 걸음을 내딛습니다.
내 나이 마흔, 이거 꽤 괜찮은 일 아닌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