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궁금하다?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1999-10-16

조회수 1364

마침내 나무들이 문을 닫고 긴 침묵 속으로 가라앉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고운 단풍으로 옷 입기 전에 벌써 갈색으로 갈아 입는 창 밖 풍경..

실로 오랫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여유를 부리는 날입니다.
적당한 톤의 음악을 배경으로 바깥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잔잔한 즐거움이려니와 묵은 먼지를 떨어내며 빛 바랜 시집을 꺼내 읽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입니다.
1980, 1982, 1984, 1990...
시집 뒷 장에 적어 놓았던 책을 구입했던 연도를 확인하며
처음 그 詩를 만났을 때의 가슴 떨리던 감동을 기억해 냅니다.

며칠 전 마흔을 바라보는 후배 하나가 물었습니다.
"마흔의 가을이 어때요?"
"마흔? 음~ "
가장 적절한 대답을 찾다가 나 역시 마흔을 앞두었던 어느 땐가
누군가에게 그리 물었던 적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마흔의 가을이 궁금하니? 그럼~~ 니가 마흔이 되어봐."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무게가 다른 마흔의 가을을 어찌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으리오.

그리고 후배에게 덧붙인 한 마디,
"마흔은 출발이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이번에는 후배가 미소를 짓습니다.
당치 않다는 뜻이겠지요.
인생을 계절로 표현한다면 마흔은 초록의 무성함이 스러지기 시작하는 이른 가을이라나요?
하지만 나는 긴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습니다.
후배의 마흔에 그녀 도 알게 될 테니까요.
마흔의 가을이 어떠한지를, 그리고 내가 말했던 '출발'의 의미를...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변을 돌보기에 급급하여 정작 자신의 내면을 돌보지 못했던 이전 시간에 비해 마흔은 달려오던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내가 아니라 정말 자신이 원했던 나를 찾아가는 출발이라 여겨집니다.

낙동강을 끼고 펼쳐진 김해평야엔 황금색 물결이 한창입니다.
봄과 여름과 이른 가을 동안 비바람과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땀과 인내를 심었던 농부들의 수고가 풍성한 결실을 맺고 있음을 봅니다.

내 인생의 늦가을을 맞이할 때 나는 어떤 열매를 거둘 수 있을 지
나는 그것이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