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긴 이별 그리고 오랫동안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1999-10-29

조회수 1680

잠시의 만남, 그 짧은 만남 후에 긴 이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랫동안 잊은 듯이 지내다가 지난 주말 나는 일 년여 만에 다시 그 곳을 찾았습니다.
아니, 마치 잊은 듯한 표정으로 지냈을 뿐 정말 잊은 건 아니었습니다.
단풍으로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보다는 늘 푸른 상록수들이 많은 산,
나는 내내 그 산이 그리웠습니다.

아마도 첫사랑이 시작될 무렵이었던가요?
나는 첫사랑을 닮은 파란색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마음 먹었고
그 후로 여태껏 좋아하는 색깔을 선택함에는 여지가 없었습니다.
사실 핑크 같은 칸츄리티(?)한 색깔이 훨씬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는 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얼마전부터 초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산내음도 바다향만큼이나 사랑스러워졌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라고 했던가요?
어쨌든 그렇게해서 지난 해 가을, 산을 좋아하는 친구와 더불어
틈틈이 찾았던 산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동안의 산행은 추위가 시작되면서 흐지부지해졌고
나는 그 산을 그리워만하다가 봄과 여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루해가 지려는 오후 5시 무렵,
늦게서야 가벼운 점퍼차림에 연두색 배낭 하나 어깨에 매고 산에 올랐습니다.
마치 진한 차의 향을 음미하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산길을 걸었습니다.
일상에서 들려오던 모든 소리가 그치고 자연의 소리가 마음의 소리와 만나는 시간,
오래도록 기다려준 새와 나무와 다람쥐 들에게
그간의 안부를 전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처럼 변함없이 반겨주는 자연에 안겨 행복을 누리는 저녁무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