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옆에서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1999-11-02

조회수 1590

꽃집 앞을 지나갑니다.
소담하게 피어있는 국화 화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노랑과 보라, 분홍의 소국을 사랑스레 바라봅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금방 눈에 띄지 않지만
꽃송이 하나하나에 나름대로의 표정을 담은 소국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국화가 너무 예쁘네요."
라고 말하는 내 인사에 꽃집 아주머니가 대답을 합니다.
"젊은 새댁들은 국화를 보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나이가 든 손님들이 오시면 꼭 그렇게 말을 하네요. "
에구~ 그럼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
사실 그랬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장미나 백합, 후리지아 같은 꽃들이 좋더니
언제부턴가 이름도 모르는 수수한 들꽃이 아 름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에게도 장미나 백합이 흉내내지 못하는 그만의 은은한 향기와 멋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내 나이 마흔에야 평범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평범하다고 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고마워하지 않았던 것들은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앞서간 선배들이 말했던 행복의 기준,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 갖게 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절대적인 가치 기준에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가족들의 식사를 정성스레 준비하는 일, 구겨진 와이셔츠를 빳빳하게
다려내는 일, 한 송이 꽃을 꽂아두고 바라보는 즐거움.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소홀히 대하고 무시하며 지나쳐 버리진 않았는지 돌아보는 걸음이 부끄러워집니다.

아직도 봉오리를 다 열지 않은 연보라 화분 하나를 골라 한지로 포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나 잘 보이는 거실 한켠에 자리를 정해 줍니다.
집안 가득한 국화향, 새로운 가족 하나가 늘어난 기분입니다.
퇴근해서 돌아온 오리지널 경상도 싸나이인 남편도 한 마디 거듭니다.
향기란 누구에게든 유쾌하게 하는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

다시 맞는 아침.
오랫만에 내 맘에 쏙 들었던 그 국화 화분을 출근하는 남편에게 건네줍니다.
"여보, 가을이네요. 당신 방에 두고 보세요."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는 아침,
국화의 향기만큼이나 아름다운 향기가 우리의 삶 속에 풍성하길 기도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