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1999-10-30

조회수 1775

기쁨이 샘물처럼 솟아나듯 슬픔도 샘물처럼 가슴 속에 고인다는 것을 알 것 같은 날.
오늘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주말의 오전 무렵, 하던 일을 다 접고 잠시 산을 찾았습니다.
음악이 들리는 야트막한 산 입구에서
중풍으로 고생하시는 어르신들이 힘겹게 걷고 있는 모습을 만납니다.
걸음을 옮기기도 어려워 보이건만 부지런히 자갈길을 걷는 광경이 안스러워 보입니다.

산길을 걸으며 생각합니다.
때로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저레 흔들면서도
그 자리에서 멈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묵은 습관이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다른 길로 간다는 건 더더욱 쉽지 아니합니다.
건강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제는 평소 자신을 돌 볼 겨를없이 살아온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며칠 전 종합검진을 하고 건강의 적신호가 반짝이고 있음을 발견했다는 친구의 얼굴이
무척이나 어두워 보였습니다.
주어진 삶의 순위에서 늘 꼴찌에 있었던 자신의 순위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앞만 보고....
그 친구만의 이야기일까요?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알았으니 다행이지?"
겨우 찾아낸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다시 고이는 슬픔..
마음으로 읊조리는 詩 한 편.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
슬픔, 너였구나
(류시화님-'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