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을 맞으며*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0-11-10

조회수 1563

입동이랍니다.
입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따뜻한 날씨라고 까불었더니 역시 입동은 입동이었습니다.
일기예보를 듣고 옷을 챙겨 입고 나갔음에도 종일 추위에 떨었던 하루였습니다.
나는 아직 가을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는데, 숲 속 오솔길을 걸어보지도 못했는데,
단풍구경도 못했는데 벌써 겨울이라니…

지난 달력을 봅니다.
가을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날이 바로 어제였는데 언제 그 많은 시간이 지나갔을까요?
나는 무엇을 하느라 시간의 흐름을 잊고 살았을까요?
내가 보내고 싶든 보내고 싶지 않든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을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습니다.

코트 깃을 올리며 생각합니다.
계절 뿐 아니라 인생의 겨울도 이렇게,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게 아닐까요?
가을이 한참이나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아직도 일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마음 놓고 있을 때 겨울이 찾아와 곧장 집을 비워 달라고 독촉하는 건 아닐까요?
내내 20대로 살 줄 알았는데 어느 날 30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30대가 되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40대가 되었습니다. 아마 50대나 60대, 70대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종종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하지만 마음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정해진 속도로 빠르게 흘러갈 것이고 우리 모두는
누구나 원치 않는 겨울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낙엽을 보는 일만 남을 겨울이…
의학이 발달되어 인간의 평균수명이 연장되었다고는 하나 그 날이 나에게 허락될 것이라고
어느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신문에는 사고 소식으로 가득하고
병원에는 내일을 보장 받지 못하는 많은 환자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체코 속담이 생각납니다.
‘겨울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으리라. 여름에는 무엇을 했느냐고.’

내 인생에 겨울이 찾아오는 날, 당당하고 담담하게 할 말을 준비하는 삶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