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0-11-27

조회수 1644

오래 전 친구가 말했습니다.
  “바보가 무슨 뜻인지 아니?”
  “글쎄~ 바보라… 아하, 바다의 보배!”
  “땡! 그것보다 깊은 뜻이 있지. 바=바라보면 볼수록, 보=보고 싶은 사람. 어때? ”
  “이야! 그렇게 멋진 뜻이…”

그날부터 나는 '바보'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라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바보'가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괜찮은 것 같아 보여도 대부분의 경우 다가서면 설수록, 보면 볼수록
미운 모습이 드러나게 되니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같았는데 돌아보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이기심을,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 같았는데 어느 새 발 빠르게 계산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바보'란 처음부터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십 수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그 말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바보'를 동경하며 살고 있는 나를 봅니다.

이른 겨울, 벚나무 한 그루가 떨고 있습니다.
사나운 바람이 사정없이 나뭇가지를 흔들어댑니다.
파르르 떨던 나뭇잎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맥없이 떨어집니다.
수분이 다 빠져 나가고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라지는 낙엽 하나를 주워 듭니다.

봄날에는 두근거리는 연두 빛 희망으로, 여름에는 지친 사람들이 쉬어가는 그늘로,
가을에는 알록달록 단풍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더니 그의 역할이
끝나버린 이 계절에는 바람 부는 대로 인도되어 흙 위에 덮이고 마침내 흙 속에
녹아지고 썩어져서 또 다른 봄을 준비하게 될 '바보' 같은 나뭇잎의 일생을 생각합니다.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는 사랑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나누고 나누어도 모자라는 섬김의 손길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나는 그리 될 수 없을까요?
'바보'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일까요?
사랑으로 인하여 피와 땀과 눈물을 다 쏟아 주셨던 예수님처럼 살 수는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