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은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0-12-14

조회수 1631

여행에서 돌아와 기차역이나 공항의 출입구를 빠져 나올 때마다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마치 누가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잠시 부산을 떠났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으면서,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누군가
나를 반가이 맞이해 주길 기대합니다.
어쩌면 그러한 심리는 내가 이 곳에 속한 사람임을 확인하는 절차인지도 모릅니다.

몇 해 전 미국에 사는 언니네 가정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세계적인 명소를 구경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람들의 친절한 환영을 받았지만 그 땅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돌아오기까지
내 마음은 온통 그리움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림 같은 풍경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거닐 때마다 그 동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리 동네의 비쩍 마른 가로수가 그리웠고 기 죽이는 쇼핑 몰을 구경하면서도
컬컬한 사투리로 시끌벅쩍한 우리 동네 재래시장이 못내 그리웠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예정했던 한 달을 못 채우고 서둘러 돌아오면서 그 날 일기장엔
'나 조국에 품에 안기다.'라는 글을 썼던 기억에 웃음이 납니다.
누가 보면 애국자 났다고 놀리겠지만 그 때는 정말 애국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
습니다.

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대궐 같은 집이 아니라도, 진수성찬을 먹지 못한다 해도 나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내가 머물렀던 공간이 넓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손꼽아 나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잡으며 내가 그들의 일부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요?
내 삶의 터전, 나의 자리, 미소로이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머지않아 먼 여행에서 제자리로 돌아올 친구에게 너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라
말해 주고 싶습니다.
너는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 말해주고 싶습니다. 너는 내게 기쁨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12월에는 향기 좋은 국화 한아름 안고 친구의 귀향을 마중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