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1-12-02

조회수 2527

내 나이 스물 둘, 언니 나이 스물 다섯이었던 가을,
언니가 결혼을 한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언니랑 큰 말다툼조차 하지 않고 사이좋게 자라왔는데 결혼하기 한 달 남짓 남겨 놓고서부터 언니에게 괜히 트집을 잡고 심술을 부렸습니다.
당연히 축복하며 기쁜 마음으로 보내야 하는데 짝사랑의 은밀한 이야기까지 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친구인 언니를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운했던 까닭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언니를 보낸 후 힘들어 할 게 뻔한 나를 위해 그렇게 해서라도 정을 떼려 했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늦은 시간 도서관 구석자리에 앉아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었지요.

나이가 들면서 모든 만남에는 반드시 이별의 순간이 있다는 걸 알아갑니다. 어떤 만남은 생각보다 빠른 이별의 날을 맞이하고 어떤 만남은 이별의 순간이 유예될 뿐…

나는 가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가는 사람의 뒷 모습을 바라보거나 남겨진 흔적을 보며 오래도록 그 님을 생각하는 것은 남은 사람의 몫이니까요.

오늘은 문득 잊고 살았던 20년 전의 그 날이 생각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나도 모르게 은근슬쩍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해 줄 시간이 많지 않은데, 돌아서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할 게 뻔한데 다정하고 부드럽게 대하지 못합니다.
이렇게라도 정을 떼야 이따가 보고 싶을 때 견디기 쉬울 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