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쓰는 편지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1-12-18

조회수 2578

저녁 무렵, 가랑비 내리는 바닷가 벤치에 앉았습니다.
어둠이 깔리는 바다에서 한참동안이나 밀려가고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처럼 편지 한 장 써서 이 바다에 띄우면 적도의 반대편 저 바다에 살고 있는 그리운 이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어떤 차림새이든지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거리를 걷다가 자유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알든지 모르든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나는 그리스도인이며 나의 부모님이 소중하게 여기시는 한국인 조금엽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방인으로 머무르고 있는 이 곳에서도 여전히 나는 나답게 살아야 하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주일,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마치고 나오다가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약속이나 한 것 같은 우연으로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옆 자리 짝꿍이었던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화들짝 놀라는 나에게 마치 그 시절의 그 아이 같아 보이는 사내 아이와 딸 아이를 소개하며 웃고 있는 그에게서 17년의 긴 세월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연’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습니다.
몇 천 분의 일, 아니 몇 만 분의 일의 확률일지라도 만나야 할 사람은 어느 모퉁이에선가 만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빗방울이 차츰 굵어집니다.
떠나있으면 멀었던 님도 가깝게 여겨집니다.
소홀했던 님도 소중한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옷을 적시는 빗방울처럼 막연한 그리움이 가슴에 스며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