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언저리에서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2-11-10

조회수 1792

컴퓨터를 켜자 샛노란 은행잎이 비처럼 흩날립니다.
어제는 바탕화면에 가을풍경을 깔았습니다.
가을이 가려 하는 이즈음에야 비로소 단풍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님은 돌아서려 하는데 나는 이제서야 님을 사랑하다니...

해마다 사람들이 단풍구경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저 남의 동네 이야기거니 들어 넘겼는데 올해는 은행잎이 비처럼 내린다는 그 어딘가에서 온 종일 은행나무 비 한번 실컷 맞아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집니다.

어디서 읽었을까요?
누구의 詩였을까요?
‘가을은 사랑에 빠진 하나님의 얼굴’이란 구절이 떠오릅니다.
기막히게 어울리는 표현…
창원으로 가는 길, 화려한 가을빛으로 옷 갈아입은 불모산 자락을 지나다가 내 마음도 기어이 물들고 말았습니다.

카세트 장을 뒤져 몇 년 동안 잊고 있었던 카세트 테잎를 차에 꼽았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박인수 님의 목소리가 편안합니다.

“저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처음부터 아무 말로 하지 않았네
비바람 몰아칠 때도 잎새 떨리는 아픔을 말하지 않았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왔다 떠나네”

간간이 생각나는 소절을 가만가만 따라 부르는 사이, 잠자던 기억들이 하나 둘씩 되살아나기 시작합니다.
나는 흐르는 음악을 타고 먼 기억 속으로 혼자만의 가을여행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