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미련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6-09-24

조회수 268

나의 상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장소를 꼽으라면 역시 나의 책상입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여유가 있고 심리적으로 안정상태일 때는 책상 위가 잘 정돈되어 있지만 
마음이 분주하고 어수선하면 책상 위에 올려진 것이 많고 흐트러져 있습니다. 

저녁 예배를 다녀와서 책상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무더위가 극심했던 지난여름, 사람들이 더위와 싸우고 있을 때 
나 역시 복잡한 생각들과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름도 지나가고 이제는 누가 뭐래도 확연한 가을인데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시간이 날 때 차근차근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모아둔 자료들과 잡다한 우편물들을 처리하기로 합니다. 버리기엔 아깝지만 어차피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있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책상 한편은 계속해서 무엇인가 쌓이게 될 것이고 내 마음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조차 가지지 못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새로운 출발은 이전 것을 버림에서 시작됨을 알 것 같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은 
‘버릴 수 있는 용기’와 ‘미련’이란 단어가 언제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버릴 수 있는 용기’의 손을 들어줍니다. 

휴지통으로 들어갈 것은 들어가고 책장에 꽂혀질 것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다시 세권의 책만 남은 책상 위, 
아! 개운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