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6-12-02
조회수 1042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반칠환 님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속도에 관한 명상13’을 읽다가
나로 나 되게 하는 힘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것들, 보여지는 그럴싸한 것들이 나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여차하면 시들 수밖에 없는 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땅 속에 깊이 내린 뿌리가 없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보도블록 틈 속에서 피어나는 씀바퀴,
서울 하늘을 선회하며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제비 한두 마리,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도라지 장수 할머니,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슬픈 뒷모습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삶의 고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때에 우리는
달리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배우게 되고
걸음을 멈추어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홀로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그 깊은 생각들이 믿음 속에 녹아지고 언어와 소리로 표현되어지며
비로소 색깔과 향기를 지닌 내가 됩니다.
고뇌,
나로 나 되게 하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