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08-12-23

조회수 1313

지난 주간에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몇몇 좋은 님들과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만남이었지만 어떤 분은 이전에 함께 방송을 했던 분이고, 몇 분은 안면이 있는 터라 우리 대화는 편안하게 이어졌습니다. 대부분이 40~50대의 인생의 연륜을 가진 크리스챤 교수님들이어서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러웠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최진실 씨의 죽음에 대한 주제를 꺼냈고, 그 죽음의 원인은 ‘외로움' 때문이었다는 생각으로 모아졌습니다. 이 땅의 뭇 남성들의 연인으로 사랑을 받았고 그녀 주위에는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는 절친한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그녀의 가슴 깊은 곳의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었던 게지요. 
만약 그녀에게 진정으로 내면의 깊은 마음, 아픔과 슬픔, 사랑과 미움의 솔직한 감정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래도 그녀가 그렇게 허망하게 떠났을까 생각해 봅니다. 

며칠 전, 외모와 연기력에 있어 한국 5%안에 든다는 최고 미남 영화배우 J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특히 요즘에.. 밤에 잠을 못 잘 때도 많고요.." 
의외인 듯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이런 날 떠오르는 詩 한 편, 
‘허기’. 

    너와 둘이 있을 때 외롭지 않으려고 
    나는 너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았다. 
    갈 데 없는 마음이 오늘은 혼자 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외로움이 더 덤빈다. 
    그래서 밥을 많이 먹어본다. 밥을 먹고 돌아서도 
    허기가 진다. 허기가 지면 나는 우울에 빠진다. 
    어느 땐 우울이 우물처럼 깊다. 
                                                      천양희 님 

      
겨울이 제대로 실감났던 아침, 
주차하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그 사이 손이 시렸습니다. 
내 방으로 들어가다 함께 일하는 우리 팀의 일원인 한 형제의 책상에 놓인 장갑을 보았습니다. 
그 장갑을 끼고 있으면 전혀 춥지 않을 것 같은... 
아마도 새신랑인 그에게 각시가 준 선물인 듯한 장갑 덕분에 웃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추운 때를 지나는 이즈음, 
그대가 나에게, 내가 그대에게, 
우리가 서로에게 장갑이 되어준다면 
이 겨울, 그래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겠지요? 

가만가만 읊조리는 정희성 님의 詩.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