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문에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10-09-19
조회수 895
그녀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 모양이 된 것은 그 사람 때문이예요!”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그 때 그 사건만 없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거예요.”
많은 이들의 생각의 바탕에 ‘때문에’라는 단어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사람 때문에, 그 일 때문에, 그 환경과 형편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는 불평과 원망과 후회가 따라다닙니다.
그들의 시선은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로 인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부적인 힘이 나를 힘들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전적으로 그것 때문만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도권을 타인이나 환경에 맡겨 버림으로 그것들에 끌려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상황을 쉬 바꿀 수 없다 할지라도 나의 행, 불행의 선택권이 나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하고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면서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조적 가족치료 이론 중 ‘경계선’ 이론을 떠올립니다.
가정은 가족 간의 상호작용으로 관계가 형성 되는데. 가족 구성원과 구성원 사이에 명료한 경계선이 있을 때 각자가 독립적이되 유연성을 갖고 ‘같이 또 따로’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과 구성원 사이의 경계선이 애매할 때(=융합된 가족) 가족들이 모든 문제에 관해 서로 지나치게 얽혀서 필요 이상으로 관여하며, 어떤 이는 지배자가 되고, 또 어떤 이는 피지배자가 되는 종속관계를 형성하고, 지배자는 다른 구성원의 삶을 간섭, 통제, 조종하며, 피지배자는 힘 있는 지배의 조종을 따라가긴 하지만 내면에는 피해의식이 기득한 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효, 사랑 내지는 다른 그럴싸한 말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어떤 말로 표현된다 하더라고 건강한 가족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경직된 경계선으로 유리된 채 살아가는 가족도 있습니다. 가족이지만 서로에게 냉담하며 한 집에 같이 살지만 따뜻한 정서의 교감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더러 “마음을 나누고 싶지 않고 말을 섞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살아온 날 동안 가슴속의 상처가 그만큼 컸다고 이해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이러한 가족 구조가 3~4대에 걸쳐 형성되어지기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부모로부터 전수된 삶의 방식을 답습하고 다음 대에 물려주면서 계속해서 그 구덩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새로운 삶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행복한 가정,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의 일원이되 독립된 개체로서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건강한 가족관계가 우선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절한 거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흔히 “친구를 잘못 만나서...”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를 따라가기로 결정한 것은 본인이며, 그 사람 안에 그런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내재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것을 그치고 자신의 결정과 삶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는 주체적 생각을 굳게 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될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아정체감이 분명하다면 누가 뭐라든지 쉬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갈 테니 말입니다.
추석이 가깝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주부들의 스트레스와 부부간의 다툼, 명절증후군과 같은 주제들이 기사의 단골메뉴로 등장합니다. 최근에는 처가에 대한 남편들의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가 뜨는 것을 보면서 시대가 달라졌음을 실감합니다.
가족의 하나 됨을 확인하는 추석,
‘전통’이란 단어에 묶여 형식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보다는 건강한 관계 속에서 건강한 가족들이 건강한 사랑을 나누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과거에서 현재로, 새롭게 펼쳐질 내일로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는 용서로 묻고 현재와 미래는 사랑으로 엮어 ‘같이 또 따로’ 모두가 행복한 가정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내가 이 모양이 된 것은 그 사람 때문이예요!”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그 때 그 사건만 없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거예요.”
많은 이들의 생각의 바탕에 ‘때문에’라는 단어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사람 때문에, 그 일 때문에, 그 환경과 형편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는 불평과 원망과 후회가 따라다닙니다.
그들의 시선은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로 인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부적인 힘이 나를 힘들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전적으로 그것 때문만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도권을 타인이나 환경에 맡겨 버림으로 그것들에 끌려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상황을 쉬 바꿀 수 없다 할지라도 나의 행, 불행의 선택권이 나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하고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면서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조적 가족치료 이론 중 ‘경계선’ 이론을 떠올립니다.
가정은 가족 간의 상호작용으로 관계가 형성 되는데. 가족 구성원과 구성원 사이에 명료한 경계선이 있을 때 각자가 독립적이되 유연성을 갖고 ‘같이 또 따로’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과 구성원 사이의 경계선이 애매할 때(=융합된 가족) 가족들이 모든 문제에 관해 서로 지나치게 얽혀서 필요 이상으로 관여하며, 어떤 이는 지배자가 되고, 또 어떤 이는 피지배자가 되는 종속관계를 형성하고, 지배자는 다른 구성원의 삶을 간섭, 통제, 조종하며, 피지배자는 힘 있는 지배의 조종을 따라가긴 하지만 내면에는 피해의식이 기득한 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효, 사랑 내지는 다른 그럴싸한 말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어떤 말로 표현된다 하더라고 건강한 가족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경직된 경계선으로 유리된 채 살아가는 가족도 있습니다. 가족이지만 서로에게 냉담하며 한 집에 같이 살지만 따뜻한 정서의 교감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더러 “마음을 나누고 싶지 않고 말을 섞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살아온 날 동안 가슴속의 상처가 그만큼 컸다고 이해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이러한 가족 구조가 3~4대에 걸쳐 형성되어지기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부모로부터 전수된 삶의 방식을 답습하고 다음 대에 물려주면서 계속해서 그 구덩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새로운 삶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행복한 가정,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의 일원이되 독립된 개체로서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건강한 가족관계가 우선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절한 거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흔히 “친구를 잘못 만나서...”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를 따라가기로 결정한 것은 본인이며, 그 사람 안에 그런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내재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것을 그치고 자신의 결정과 삶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는 주체적 생각을 굳게 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될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아정체감이 분명하다면 누가 뭐라든지 쉬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갈 테니 말입니다.
추석이 가깝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주부들의 스트레스와 부부간의 다툼, 명절증후군과 같은 주제들이 기사의 단골메뉴로 등장합니다. 최근에는 처가에 대한 남편들의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가 뜨는 것을 보면서 시대가 달라졌음을 실감합니다.
가족의 하나 됨을 확인하는 추석,
‘전통’이란 단어에 묶여 형식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보다는 건강한 관계 속에서 건강한 가족들이 건강한 사랑을 나누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과거에서 현재로, 새롭게 펼쳐질 내일로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는 용서로 묻고 현재와 미래는 사랑으로 엮어 ‘같이 또 따로’ 모두가 행복한 가정들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