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탄재
작성자 조금엽
등록일 2015-06-16
조회수 687
어린 시절 우리 꼬맹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비록 구경꾼이지만 교회 중.고등부 언니 오빠들의 크리스마스 이브 잔치에 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선물교환!
멋지게 포장한 커다란 선물 상자 하나가 예쁜 언니에게 건네졌을 때,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런데 포장지를 벗기는 순간, “에이~”하는 실망의 소리와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포장 속의 선물은 타고 남은 연탄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때라서 가능했던 이야기지만 오늘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메르스 공포가 한창인 날,
카톡 한 통이 들어왔습니다.
‘가면 안 되는 부산의 병원’이라는 제목에 메르스 감염환자가 치료 받았던 날짜와 병원 이름 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가깝고, 그 병원에서 근무하는 지인도 있어 근심스레 읽습니다.
남편이 읊조리듯 말합니다.
“중견병원으로 키우려고 오랜 세월 많이 애썼을 텐데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한순간 이런 일을 당하다니 우리 인생이란 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소?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오.”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맞아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예요.”
겨우 뭔가를 하는 시늉이라도 할라치면 있는 대로 마음을 높이고 하늘에 닿을 듯 큰소리를 치지만
화려한 포장지에 싸인 연탄재 같은 인생의 진면목을 마주하면서 정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옷을 입었든지 나는 연탄재에 불과합니다.